[기자의 눈] 비우기 위해 걷는 사람들

종교는 신념으로 짓는 경건한 노동의 영역이다.

일생동안 전심을 다해 보이지 않는 신앙을 축조해나간다.

종교와 건축은 닮은 데가 많다. 지음의 행위를 통해 공간의 개념을 창출해서다.

승효상은 종교와 건축을 하나로 관통시킨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다. 그는 "실질의 공간을 다루는 건축과, 형이상학적인 종교는 서로 밀접하다"고 했다.

과거 그는 종교가 테마인 마산성당, 경동교회, 조계종불교문화센터 등을 설계하고 공간에 비움의 역설을 부여했다.

평소 승효상은 "공간을 채우지 말고 비워내 그 영역을 사람에게 내주자"는 건축론을 내세운다. 오래전부터 그가 주창해온 '빈자(貧者)의 미학'이다.

그는 예수를 건축가에 빗댄다. 자기 집이 아닌 남의 집을 짓는 건축가는 타인의 삶과 존엄에 대한 관심, 사랑, 존경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이를 위해 심령의 가난함과 애통은 성찰적 삶을 갖게 함으로 바른 건축가가 되는데 필요한 것이라 봤다. 그러면서 예수 역시 인간을 위해 더 큰 집을 지어주려고 광야로 나간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펼쳤다.

본래 종교는 비워냄을 본질 삼는다. 인간 내면에 꽉 들어선 '나'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텅 비워내자는 거다. 거기서 체득하는 고요함은 그 영역을 신에게 내어주어 겸손과 성숙을 이루어가자는 읊조림이다. 깊고 광활한 종교 세계에 함의된 언어다.

하지만, 인간은 비움을 위한 영역을 소유할수록 되레 인색해지는 모순에 함몰된다. '나'를 비우기 위한 종교가 '나'를 가둘 때다. 모순으로 막혀가는 공간은 사방의 시야를 가리고 '나'를 고립시킨다. 그 감옥엔 독선적인 자아의 포만만 남는다. 그릇된 신념으로 신앙을 축조했을 때 생겨나는 폐해다.

건축의 과정에서 매순간 측량이 중요하다면 종교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축조는 완성이 아닌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부실한 결말에 이른다. 신념으로 짓는 행위에 심혈을 기울이는 만큼 자신을 돌아보는 일을 절대 소홀할 수 없는 이유다.

한국의 학자들이 지난 한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선정했다. 사견(邪見)과 사도(邪道)를 깨고 정법(正法)을 드러낸다는 것으로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고 바름을 드러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늘날 종교계는 분명 '파사(破邪)'가 요구된다. 곳곳에서 잘못된 종교적 축조를 허물어야 한다는 소리가 들려오는 시대임이 자명하다.

하지만, 그릇됨을 깨는 데는 자기 성찰이 먼저 돼야 한다. 종교인은 가장 먼저 신 앞에서 '나'를 반추하는 사람이다. 자성이 결여된 파사는 종교의 노동을 통해 또 다른 모순에 함몰시킨다. 자아를 비워내기 위해 '나'를 파사 할 때 비로소 '현정(顯正)'이 따라온다. 거기서 비롯되는 바름은 개인에서 사회로 전도된다.

새롭게 떠오른 무술년의 해가 각계를 비추며 시작을 알린다. 그 빛은 종교를 소유한 이들에게도 서둘러 발을 내딛도록 채비를 독촉하는 듯 하다. 종교인은 그렇게 각자의 신념과 방식대로 새 빛을 자양 삼아 비움을 위한 길을 걷는다. 오랜 여정에서의 털어냄은 걸음을 더욱 가볍게 하고, 낮아짐은 호흡을 내려앉게 한다. 그건 가장 먼저 '나'를 돌아보는 데서 기인한다.

장열 / 사회부·종교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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