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환 법률칼럼] 올림픽의 꽃

장준환/변호사

동계올림픽의 꽃은 무엇일까? 아이스하키 종목이라는 의견도 있고, 여자 싱글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빙상을 아름답게 수놓은 후 금메달을 목에 걸던 장면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남아 있다.

하계올림픽의 꽃은 논쟁의 여지없이 마라톤이다. 올림픽 정신의 상징과도 같은 종목으로 폐막식 직전에 경기를 치르며 대회의 대미를 장식한다. 1992년 8월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1위로 결승점을 통과하던 때, 한민족이 느꼈던 환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느낌은 역사를 관통하여 1936년까지 이어져 있다.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던 때이다. 그러나 그때는 나라 잃은 국민으로서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껏 기뻐하고 감동에 젖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 기억 속 손기정 선수의 올림픽 우승 장면은 뚜렷한 영상으로 남아 있다. 결승점을 통과하는 모습, 월계관을 쓰고 손을 흔드는 장면을 수차례 TV 영상으로 보아왔기 때문이다. 베를린 올림픽은 경기 장면을 TV로 중계한 최초의 올림픽 대회이다. 그 영상이 없었다면 우리의 회한은 좀 더 흐릿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처럼 올림픽의 꽃을 활짝 피운 자양분이 바로 TV이다.

올림픽의 역사는 TV의 역사다. 올림픽의 주 수입원인 저작권이 확장된 것도 TV를 통해서이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은 최초로 TV 중계를 했다.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는 제한적이나마 IOC 차원의 TV 중계권료가 발생했다. 금액은 1,000파운드(약 150만 원)였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의 경기 장면은 미국과 유럽 가정의 TV로 송출되었다. 물론 3~5일 걸리는 녹화 방송이었다. 1960년 로마 올림픽부터는 획기적으로 인공위성을 통해 전 세계에 올림픽 경기가 생중계되었다. 이로부터 상업적 차원의 TV 중계권료 개념이 생겼고, 올림픽이 세계인의 축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후 반쪽짜리 올림픽이라는 비판 속에 열린 1984년 LA 올림픽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거치면서 현대적 올림픽 중계방송의 틀이 완벽하게 잡혔다. 이와 함께 지금과 같은 올림픽의 상업화, 저작권과 후원 시스템이 형성되었다.

TV 없는 올림픽은 상상할 수 없다. 또한 올림픽은 방송사들이 촬영, 중계 등의 기술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만약 TV가 없었다면 올림픽은 소수 스포츠 마니아의 전유물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올림픽과 연관된 거액의 저작권 수입과 후원 체계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회를 거듭할수록 TV 중계권료가 치솟았다. 2016년 리우올림픽의 TV 중계권료는 40억 달러에 이르렀다.

올림픽의 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올림픽의 꽃은 TV라는 또 하나의 답변이 가능할 것 같다. 대회 흥행의 최고 도구이며 후원을 이끌어내며 저작권 수입을 발생시키는 원천이다. 그리고 직접적인 거액의 중계권료를 안겨준다. 하지만 올림픽에서 TV의 독주가 깨지는 파열음이 여러 곳에서 들려온다. 인터넷과 모바일을 앞세운 새로운 매체의 등장 때문이다. TV와 뉴미디어의 경쟁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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