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오디세이] 현대차 미주 디자인스튜디오 최수민 매니저, 상상 그 이상을 디자인하다

현대차 미주 디자인스튜디오 최수민 매니저가 어바인 사옥 내에 디자이너들의 이름과 사진이 걸린 목판 앞에서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중2때 뉴욕 가족이민
독일유학 후 유럽서 활동

포르셰·오펠·폭스바겐 거쳐
05년 미국 BMW로 와

2012년 현대차 입사
‘이오니크’ 론칭해 주목

2015년 고성능 콘셉트카
독일 오토쇼서 선보여 극찬


대개 직업에 대한 판타지는 실제 그 직함을 가진 이를 만나는 순간 십중팔구는 깨지기 마련. 그러나 이 불문율을 보기 좋게 배신한 이가 있다. 현대자동차 미주 디자인스튜디오 최수민(53) 크리에이티브 매니저다. 180cm가 훌쩍 넘는 큰 키에 청바지와 진녹색 스웨터, 스니커즈를 무심한 듯 시크하게 매치한 그에게선 한 눈에도 디자이너만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게다가 지천명을 넘겼다고는 믿기지 않는 동안까지. 그러나 이보다 더 마음을 잡아 끈 것은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열정이었다. 이제 막 사랑에 빠진 로미오의 눈빛이 이러하려나. 차 이야기만 나오면 볼 빨간 사춘기 소년마냥 설렘 한 가득이다. 듣는 이까지 덩달아 그 설렘이 전염될 것만 같았다. 포르쉐와 폭스바겐, BMW 등 세계 명차 브랜드를 거쳐 6년 전부터 현대 차에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는 그를 현대차 어바인 스튜디오에서 만나봤다.

#소년, 차와 사랑에 빠지다

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차라면 껌뻑 죽었다. 또래 친구들이 만화책에 빠져 있을 때 소년은 서울 청계천 헌책방에 앉아 미국 자동차 전문잡지를 뒤적였고 방과 후엔 동네 폐차장을 놀이터 삼아 자동차 부품 구경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당시 국산차로는 현대 포니가 유일했는데 포니를 몰던 택시기사님들이 너무 멋져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어린 시절 제 장래희망은 늘 택시기사였습니다.(웃음)”

이처럼 평범한 유년생활을 보내던 중 농구 국가대표 선수였던 부친이 사망하면서 가족은 1978년 뉴욕으로 이민 왔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어린 그에게 이민생활이 녹록할 리 없었지만 어려서부터 해온 농구 덕분에 그는 퀸즈 소재 고교 농구팀 창단 역사상 최초의 아시안 선수로 발탁될 만큼 화려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고교졸업 후 1985년 뉴욕 소재 프랫인스티튜트에 진학,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잠시 가구 디자이너로 일하다 한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1991년 서울로 가 쌍용자동차 디자인팀에 입사했다.

“당시 회사가 벤츠와 함께 합작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는데 벤츠 책임자가 제게 자동차 디자인 공부를 제대로 해보라며 독일 유학을 권유했죠.”

1년간의 유학준비 끝 그는 1994년 독일 포르츠하임대학교 대학원 자동차디자인학과 준석사(post graduate)과정에 입학했다.

#세계를 무대로 승승장구

방학 때도 학교에 남아 공부할 만큼 악착스레 학업에 매달린 덕분에 졸업 무렵엔 독일 유명 자동차 제조사들의 인턴십 제안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중 오펠과 포르쉐에서 인턴쉽을 마친 그는 1995년 포르쉐에 계약직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1년 뒤 오펠사가 그에게 대학원 학비전액 후원 등 파격적인 제안을 해와 고심 끝 이직했다. 회사의 후원으로 1996년 그는 패서디나 아트센터 대학원 자동차디자인학과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해 2년 뒤 학위를 취득했고 쌍용차 후배인 아내 김민경(46)씨와 결혼 했다. 이후 독일 프랑크푸트르로 건너가 오펠 본사에서 2년6개월을 근무하면서 그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그가 디자인한 오펠의 5도어 ‘아스트라 해치백’과 스포티하면서도 실용적인 ‘벡트라 왜건’은 큰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2001년 그는 폭스바겐이 야심차게 추진해 바르셀로나 인근 소도시에 설립한 어드밴스드 콘셉트 스튜디오로 자리를 옮긴다.

그 스튜디오는 당시 자동차 디자이너들이라면 누구나 입사하고 싶어 하는 꿈의 직장이었는데 폭스바겐사는 그와 오펠이 체결한 5년 근무계약을 지키지 못해 발생한 위약금까지 물어줄 만큼 그의 영입에 공을 들였다. 그곳에서 수퍼바이저 디자이너로 근무한 그는 2001년 북미 오토쇼에서 호평 받은 크로스오버 차량인 ‘마젤란’을 비롯해 폭스바겐 자회사인 아우디의 수퍼카 R8, 부가티 쿠페 등을 디자인해 주목받았다. 그리고 2005년 그는 캘리포니아 사우전드오크스 소재 BMW 미국 디자인스튜디오로 자리를 옮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근무했다. 2000년대 중후반 마니아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고성능 차량 X5M과 X6M, 미니 등이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한국차에 대한 오랜 꿈

이처럼 커리어에 있어 황금기를 구가하던 2012년 그는 돌연 현대차로 이직한다. 그의 상사였던 BMW 디렉터가 미주 현대차로 자리를 옮기며 그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해 온 것.

“좀 고민을 했죠. 그러다 마지막 커리어를 한국 회사와 함께 하는 것도 의미 있을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유년시절 포니를 보며 막연하게 꿨던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죠.(웃음)”

현대에 와서도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은 계속됐다. ‘프리우스 킬러’라는 슬로건을 내건 아이오닉(IONIQ)이 지난해 출시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며 2015년엔 프랑크푸르트 오토쇼에서 콘셉트카 ‘N 2025 비전 그란투리스모’를 선보여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원래 그 모델은 소니 플레이스테이션과 공동제작한 게임용 레이싱카가 원조인데 최근 현대가 론칭한 고성능 브랜드 N의 방향성과 개발잠재력을 보여주기 위해 실제 모델로 제작한 거죠. 예산만도 15억원이 투자됐고 수작업 공정까지 만만치 않은 프로젝트였죠.”

이 콘셉트카가 오토쇼에서 베일을 벗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현지 관계자들은 물론 영국 유명 오토매거진 ‘톱기어’ 등 전문가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전문가들의 극찬보다 더 좋았던 건 한국의 자동차 마니아들의 호평이었어요. 한국에서 이런 차가 탄생해 너무 감격스럽다는 평가들을 보니 너무 뿌듯했죠.”

24시간 자동차 생각으로 가득 찬, 열정으로 똘똘 뭉친 이 남자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N브랜드 개발에 박차를 가해 고성능 차 개발에 헌신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한국 차라 하면 값싸고 대중적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국민과 전 세계 한인들이 자부심을 가질만한 탁월한 고성능 차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소울이 깃든 차 말입니다.”

그에게 자동차란 꿈이며 종교라 했다. 30년 세월 그 바닥에서 잔뼈 굵으면 지겨울 법도 한데 차에 대한 열정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었다. 천재 화가 파울 클레는 말했다.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라고.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금 그가 꿈꾸는 차가 언젠가 그 베일을 벗고 우리 앞에 서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 오래지 않아, 위풍당당하게.

이주현 객원 joohyunyi30@gmail.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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