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한반도의 속도전

지난달 26일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에는 무수히 많은 눈과 귀가 집중됐다. 10여 년만에 열린 갈증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전쟁 위기감이 절정에 이른 순간에 대화가 시작된 대반전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처음으로, 그것도 10시간 넘게 생중계됐기 때문에 또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정상회담은 군사분계선을 세 번 넘나드는 파격과 무성영화 같았던 도보다리 단독회담, 만찬장까지 무편집 생중계되며 이를 지켜본 모든 이들에게 편집되고 기억될 것이다.

그 많은 이미지와 대사 가운데 내게도 기억에 남는 어떤 대목이 있다. 평화의 집 1층 환담장에서 오전 9시 44분부터 시작된 남북한 정상의 대화 한 부분이다.

▶문재인 대통령="과거에는 정권 중간이나 말에 합의가 이뤄져 정권이 바뀌면 실천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제가 시작한 지 이제 1년 차다. 제 임기 내에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달려온 속도를 계속 유지했으면 좋겠다."

▶김정은 위원장="김여정 부부장의 부서에서 '만리마 속도전'이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남과 북의 통일의 속도로 삼자."

▶문재인 대통령="과거를 돌아봤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다."

두 정상은 모두 '속도'를 강조했다. 속도는 현재 한반도의 반전을 지탱하는 힘이다. 나아가 앞으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하는 동력이다. 만약 한반도 평화정착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를 파악하려면 그 속도를 측정하면 된다고 말해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가속이 더 붙으면 더 잘 되고 있는 것이고 현재 속도를 유지하면 잘 되고 있는 것이고 속도가 떨어지면 불안한 상황이다.

한반도 정세의 반전은 속도에서 나왔고 그 힘으로 여기까지 달려왔다. 평창올림픽에 북한 특사단이 내려온 이후 3개월 동안 한반도 주변의 정상회담은 북중, 남북 모두 두 차례 열렸다. 앞으로 2개월 동안 한중일, 한일, 한미, 북미, 북중, 한러시아 6번의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3개월 새 2번에서 2개월 새 6번으로 확실히 가속이 붙었다. 현기증 나는 속도다. 최근 6월 초까지 열릴 것이라던 북미 정상회담은 6월 중순 설까지 나왔다가 이번 주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5월 안으로 앞당길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으니 속도의 관점에서 보면 긍정적이다.

속도는 애초 남북한이 만들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오간 특사단 교환이었다. 지금도 남북한은 속도를 만들고 있다. 며칠 전 판문점 회담이 그렇다. 지금까지 남북 회담은 지리한 진지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크고 작은 조건을 진지처럼 구축해 놓고 싸웠다. 이번 정상회담은 달랐다. 비핵화를, 그것도 완벽한 비핵화를 그렇게 쉽게 적시한 것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조건을 최대한 내려놓고 가벼운 군장으로 가장 신속하게 움직이는 속도전이라고 부를 만했다.

속도는 속도를 부른다. 남북한이 만든 속도는 한반도 정세를 바꾸었다. 속도는 이전의 관성적 시각으로 북핵을 바라보는 이들이 끼어들 여지를 줄였다. 몇 달 전만 해도 6자 회담이 거론됐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속도의 힘이다. 1일 한 민주당 소속 연방 하원의원은 한반도 정세 진척에 트럼프 대통령이 기여했음을 인정하면서 "이 시점에선 미국의 동맹인 한국, 일본과 합심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발언을 했다. 속도가 떨어지면 나타날 발언이다.

이전의 남북 정상회담은 임기 중간이나 후반기에 열려 속도를 못 냈다. 빌 클린턴·조지 W 부시 대통령 때 시도했던 북미 정상회담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한국이나 미국 모두 대통령 임기 초에 시작했고 속도가 붙었다. 양국의 대통령 임기 안에 즉, 정권이 바뀌기 전에 마무리 할 수 있는 속도다. 중요한 건 속도다.

안유회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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