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미국의 '적과의 동침'

지난 8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두 번째로 북한을 방문했다. 언론에 공개된 폼페이오 장관과 김정은 위원장의 표정은 3월 말 1차 면담 때보다 훨씬 밝았다.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 억류됐던 한인 3명과 함께 귀국할 때는 분위기가 익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때 이후 미국에서 나오는 북한 이야기는 두 개의 길을 간다. 하나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북한의 핵 폐기를 둘러싼 초강경 주장이다.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제거하기까지 북한에 아무것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길은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이다. 13일 폼페이오 장관은 "우리는 한국과 견줄 만한 북한의 경제적 번영을 위한 조건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력망과 인프라 건설, 미국 민간 투자 허용, 그 결과물로서 "(북한이) 고기를 먹을 수 있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장밋빛 미래까지 직설적으로 제시했다.

볼턴과 폼페이오의 공통점은 비핵화다. 다른 점은 볼턴이 오로지 비핵화만 강조하는 반면 폼페이오는 비핵화 다음에 올 번영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것이다.

폼페이오의 잇단 '북한 번영론'은 지금까지 핵과 맞바꿀 카드로 나왔던 체제 보장과 관계 정상화를 넘어선다. 2차대전 이후 유럽의 경제 부흥을 이끈 마셜 계획의 북한판으로 불릴 만도 하다.

사실 마셜 계획의 핵심은 독일 지원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처음부터 2차대전 주적이었던 독일의 경제 부흥을 결심한 것은 아니다. 애초 미국의 전후 정책은 '독일의 목초지화'였다. 헨리 모겐소 당시 재무장관이 내놓은 이 안에 따르면 미국은 독일을 거대한 목초지로 만들어 산업화 이전으로 돌려놓으려 했다. 전쟁은 꿈도 못 꾸게 아예 산업을 제거하되 먹고는 살아야 하니 낙농국가나 되라는 것이었다. 승전국 사이에서 원칙적 합의를 본 이 계획은 독일의 산업을 일으키는 마셜 계획으로 180도 바뀐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 사이 미국의 전후 세계질서 전략인 소련 봉쇄가 수립된 것이다. 전후 일본 정책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일본도 독일처럼 산업화 이전으로 돌리려 했지만 결국은 경제 부흥으로 전환한다. 마셜 계획을 국무장관 조지 마셜이 세운 점은 세계 전략이라는 면에서 당연하다. 2차대전 최대 주적이었던 독일과 일본은 소련 봉쇄와 냉전이라는 세계 전략 속에서 전후 미국의 핵심 우방으로 변신한다.

미국은 냉전 시기인 6·25 때 피 흘리며 싸웠던 중국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베트남 전쟁의 늪에 빠진 미국이 소련과 중국의 벌어진 틈을 파고들어 냉전을 누그러트리려는 새로운 전략의 시작이었다.

미국의 전후 외교에서 극적인 순간은 항상 '적과의 동침'이었다. 독일, 일본, 중국, 베트남이 적에서 우방으로 바뀌었고 그 뒤에는 미국의 세계 전략이 있었다. 물론 그 대가는 항상 경제적 번영이었다. 전후 미국과 척을 지고 경제 번영을 이룬 나라는 없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복심인 폼페이오 장관의 북한 번영 발언은 그래서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 탄생을 상상하게 한다. 북미는 지금까지는 미국의 세계 전략 속에서 피 흘리며 싸운 적이 우방이 되고 경제 번영을 받는 길로 가고 있다. 현재 미국의 세계 전략은 중국 견제 혹은 봉쇄다. 버락 오바마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 권력이 바뀌어도 이 전략만은 변함이 없다. 북한 관계자들을 만난 이들이 공통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북한은 친중 국가로 알려졌지만 중국을 믿지 않거나 싫어한다는 것이다. 베트남도 중국을 싫어한다. 북한도 베트남처럼 친미국가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안유회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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