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짧은 글, 긴 여운

인내심이 부족해졌다. 글을 읽는 데도 마찬가지다. 언제부터인가 인터넷 기사도 끝까지 읽지 않는다. 책을 읽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한 권의 책을 진득하게 읽어내려가기가 쉽지 않다. 책 대신 스마트폰이 손에 들려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서다. 그래서인지 글이 너무 빼곡히 채워진 책보다는 사진이나 넉넉한 여백이 있는 책을 고른다.

최근 구입한 책들을 보니 정말 짧은 글을 모아 놓은 책들이 여러 권이다. 잠시 짬을 내서 읽을 만한 책들이다. 그렇다고 긴 호흡의 글에 비해 깊이가 없다고 무시할 만한 책들은 아니다. 어떤 책은 글은 짧지만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고 하루 두서너 장씩 읽으면 몇 달을 읽는 즐거움을 준다. 짧지만 한번 더 생각하게, 때론 웃음 짓게 하는 몇 권의 책을 소개한다.

# 그리운 나라

'그 누가/ 희망이 없다 하나,/ 풀꽃보다 더 많단다.' (희망에 대하여)

'조용히/ 숨 쉬고 있는 것,/ 아직 두발로 걷고 있는 것.' (큰 행복)

김호길 시조작가의 홑시조집 '그리운 나라'다. 짧은 홑시조(종장만으로 된 시조)를 통해 어렵게만 느껴지던 시조를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한마디로 시조를 재발견시켜 준 책이다. 김 시인은 "시조는 트위터 시대에 맞는 문학장르"라고 주장했는데 이 시집을 읽으면 그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짧은 문장 속에도 세상 사는 이야기와 사회에 대한 풍자가 잘 녹아있다. 함축적인 짧은 문장을 되뇌면서 절로 웃음 짓게 하는 시조들이 많다.

#블랙 코미디

'어느 날 운명이 말했다. 작작 맡기라고.'(운명),

'말에 가시가 돋아서 기분이 안 좋은 줄 알고 걱정했어. 성격이 안 좋은 거였구나.'(다행이다)

'나는 굽실대지 않는 사람을 불친절하다 생각했던 것 같다. 갑질은 내가 하는 것이었다.'(갑질)

지난해 10월 출간된 유병재의 농담집 '블랙 코미디'다. '교과서와 만화책을 제외한다면 내가 태어나서 읽은 책은 오십 권을 넘지 않을 것이다. 문장력도 깊이도 없는 모자란 작가의 책'이라고 툭 터 놓은 그의 솔직함 때문인지 출간한 지 반년 만에 25쇄를 찍을 정도로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특히 20·30대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인기다. 개인적으로 그의 글은 책보다는 트위터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처음의 그 신선함이 한번에 쭉 읽어내려가기에는 점점 식상하게 느껴져서다. 그래서 두고두고 조금씩 읽기를 권한다. 어쨌든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책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 글자 사전

'어른이 되었는지 아닌지를 감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가운데 하나. 여러 과일들이 함께 눈앞에 있을 적에, 하필 감부터 먹겠다고 손을 뻗는다면 당신은 어른이다.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어느 때부턴가 그래왔다면 더더욱.' (감)

'다치면 흉이 생기고 다치게 하고 싶으면 흉을 본다.'(흉)

'감'에서 시작해 '힝'까지 310개의 한 글자 단어를 시인 김소연이 자신만의 언어와 정의로 풀어냈다. 글을 읽다 보면 한 글자를 통해 우리가 놓친 시선과 삶의 태도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오늘 생각나는 한 글자를 이 책에서 찾아보며 그 글자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발견할 때 개인적으로 이 책에 가치와 재미를 느낀다.

사회부 오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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