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물든 설악산 정상, 중턱까지 단풍 길 이어져

[더,오래] 하만윤의 산 100배 즐기기(31)

봉정암 가는 길. 빛 고운 단풍이 잎마다 살뜰히 내려앉았다. [사진 하만윤]


산의 가을은 단풍으로 온다. 입추로 시작해 처서를 지나며 더위가 가시고 찬 이슬 내리는 백로가 되면 산이 먼저 알고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해마다 9월에 기상청에서 전국 유명 산 단풍 일정을 발표하는 것이 이와 무관치 않다. 우리나라는 가을 단풍이 설악산부터 시작된다. 기상청은 9월 27일 설악산 대청봉을 기점으로 올해 단풍이 시작돼 10월 15일쯤 절정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좀 이르다 싶은, 개천절에 설악산행을 계획했다. 단풍이 꽉 들어차 있지 않더라도 아름다움과 운치는 골골이 들어차 있을 것이란 상상을 하면서.


중청대피소에서 바라본 대청봉. 곳곳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사진 하만윤]


좀 이르다 싶은 설악산 단풍 산행, 오색서 시작
만산홍엽을 기대하지 않아도 설레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날씨마저 맑고 청명하다고 하니 서둘러 배낭을 꾸리고 출발을 준비한다. 이번엔 오색에서 시작해 이미 단풍이 한창인 대청봉을 지나 중청대피소에서 아침을 먹고 소청, 봉정암, 수렴동, 영시암, 백담사까지 가는 코스로 정했다.

오색에서 대청봉으로 오르는 길은 정상으로 향하는 가장 짧은 코스이긴 해도 된비알이라 결코 녹록지 않다. 20km에 달하는 전체 코스 중 5km 남짓으로, 내내 오르막인 탓에 네댓 시간 정도 잡아야 한다. 그 시간과 국립공원 입산 가능 시간까지 고려해 새벽녘에 남설악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다.


새벽 입산 시간이 되자 등산객이 줄지어 출발을 준비한다. [사진 하만윤]


국립공원은 새벽 3시(동계는 4시)부터 입장할 수 있다. 단풍 절정기가 아니라서 그런지, 남설악탐방지원센터에 모인 등산객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일행은 조금 빠르게 걸어 대청봉에서 일출을 맞을 팀과 자신의 페이스에 맞게 천천히 오를 팀을 나누어 산행 준비를 마쳤다. 먼저 줄지어 서 있던 등산객들은 3시에 들머리 입구가 열리자마자 마치 마라톤이라도 하듯이 잽싸게 출발했다. 서두르는 등산객을 모두 보내고 자신의 컨디션에 맞춰 한 걸음씩 천천히 내딛기 시작했다.


대청에 다다르기 전에 여명을 만나다. [사진 하만윤]


새벽 미명에 헤드 랜턴 불빛과 일행의 앞선 걸음에 의지해 된비알을 올랐다. 금세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걷다 보니 조금만 서두르면 대청봉에서 일출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몽글몽글 피어 올랐다. 단풍을 기대한 산행이긴 해도 대청봉에서의 일출 또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몇몇을 제외하고 나머지 일행은 속도를 더 낸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정상에 살짝 못 미쳐 동해에 떠오르는 붉은 태양과 마주할 수 있었다. 바다를 누르고 붉은 기운을 대지에 곧게 내뻗치며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불덩어리에 일행은 한동안 넋을 놓는다. 산에서 맞는 일출은 언제나 감동이다.


대청봉에서 맞이한 일출. 군더더기 없이 장관이다. [사진 7080산처럼]


힘들게 오른 설악의 정상은 여느 가을 새벽과 달리 따듯하고 고요했다. 세찬 바람이 상존하는 곳이라 제법 쌀쌀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이날은 바람 없이 햇빛마저 따사롭다. 더욱이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날씨는 사방팔방 막힘없이 깨끗하고 넓은 시야를 선물했다. 발밑으로 서북 능선과 점봉산이, 저 멀리 위로 금강산 자락까지 선명하게 들어온다.

잠시의 감상을 뒤로 한 채 다시 발걸음을 재촉해 예정한 대로 중청대피소에 도착해 아침을 먹었다. 취사를 할 수 있는 곳이라 각자 준비해온 삼겹살을 굽고 라면을 끓여 밤새 주린 배를 채웠다. 설악의 한가운데서 노릇노릇 삼겹살과 꼬들꼬들 라면이라니. 이 조합은 언제 어디서든 진리(?)일 것이다.


중청대피소에서 바라본 공룡능선과 화채능선. 바위의 도도한 선과 이를 감싸는 숲과 나무의 넉넉함이 조화롭다. [사진 하만윤]


아침을 먹은 후 중청대피소 앞에서 공룡능선과 화채능선을 제대로 만끽했다. 맑고 깨끗한 날 덕분에 골골이 박힌 바위의 도도함이 더 도드라지고 이를 살포시 감싸는 숲의 넉넉함까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 또한 행운이다. 아름다운 능선을 바라보며 다시 길을 나섰다. 이제부터는 하산길이라 힘은 덜 들 것이나 거리가 멀어 걱정이 쉬 가시지 않는다.

소청을 지나 봉정암으로 가는 길 주위는 온통 붉고 노랗다. 이르다 싶었는데 단풍은 이미 절정을 향해가고 있는 듯했다.


용아장성을 병풍 삼아 자리 잡은 봉정암. [사진 하만윤]


봉정암은 설악산에서 가장 높은 곳인 해발 1244m에 있는 암자다. 용의 이빨처럼 날카로운 바위봉우리가 연이어 성처럼 길게 둘러쳐 있는 용아장성을 병풍 삼아 자리를 잡았다. 선덕여왕 13년(644년)에 자장율사가 중국 청량산에서 구해온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들었다는데, 이렇게 높은 곳에 큰 절을 지은 불심에 감탄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구곡담계곡에서 만난 쌍용폭포와 주위를 가득 메운 단풍. [사진 7080산처럼]


봉정암에서 영시암을 거쳐 백담사까지 가는 길은 구곡담계곡, 수렴동계곡, 백담사계곡 등 내설악의 대표 계곡이 이어져 있고 특히 설악의 아름다운 단풍 길로 유명하다. 맑은 계곡에 단풍이 비쳐 물까지 붉으니 지루할 틈이 없다.


백담사 앞 계곡. 수많은 이의 정성과 바람이 쌓아 올린 돌탑들이 장관이다. [사진 7080산처럼]


빨갛고 노란 단풍을 즐기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다 보면 어느새 백담사다. 만해 한용운 시인이 머물며 여러 저작을 남긴 곳이자, 한때 전두환 전 대통령이 기거하며 더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진덕여왕 16년(647년)에 한계사라는 이름으로 건립됐으나 총 여덟 번이나 불에 타 소실되고 건립되기를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운흥사, 심원사, 선구사, 영취사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783년 최붕과 운담이 백담사로 개칭했다고 전한다. 불에 자주 소실되는 통에 물기운이 가득한 이름을 지어 화기를 억제하려 했다는 비보풍수적인 처방이라고 하는데 이후 일본강점기와 한국전쟁 때도 화를 당하는 등 몇 차례 더 화재를 겪었다.


설악의 단풍은 처음과 절정 그 사이 어디쯤 와있다. [사진 하만윤]


백담사 계곡은 아직 푸른 숲
단풍에 취하고 풍경에 이끌려 백담사까지 오자 주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푸른 빛 가득한 숲길이 이어진다. 반나절 가량 바라보며 걸었던 단풍 길이 흡사 꿈이었나 싶다. 보통 산 전체를 기준으로 정상에서부터 20% 정도 물들었을 때를 첫 단풍, 80% 물들면 절정이라고 하는데, 설악은 그사이 어디쯤 와있었다.

기상청 날씨누리(http://www.weather.go.kr) 관측자료-계절관측자료를 클릭하면 첫 단풍부터 절정에 이르는 일정까지 유명한 산 단풍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눈부신 단풍이 하릴없는 낙엽이 되기 전에 눈에든, 마음에든 담기를 추천한다.


남설악탐방지원센터 - 대청봉 - 중청 - 소청 - 봉정암 - 수렴동대피소 - 영시암 - 백담사. 총 거리 약 20Km, 시간 약 14시간. [사진 하만윤]


하만윤 7080산처럼 산행대장 roadinm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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