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 우먼] 로사 김 포커스 피처스 홍보 디렉터 "열정·실력 있으면 높은 장벽 없죠"

대학 때부터 NBC 입사 목표
매주 이메일ㆍ전화해 인터뷰
한 단계씩 승진해 국장까지
한국인 자긍심 한국어 완벽

미국에서 소수계가 대면하는 장벽은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쉽게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높다. 그 중에서도 더욱 만만치 않게 높은 곳이 미디어 분야와 엔터테인먼트계다.

NBC 유니버설의 자회사인 필름제작ㆍ보급사 '포커스 피처스'(Focus Features)에서 홍보 디렉터(Director of Field Publicity)로 일하는 로사 김(Rosa Kim)은 애초에 이 높은 벽을 감지하고 '이왕이면 높은 곳을 향해보자'는 야심으로 맞섰던 당찬 여성이다.





현재 그가 하는 일은 포커스 피처스에서 제작한 작품이나 보급할 영화를 각 지역의 현장에 직접 나가 홍보하는 일이다. 까다로운 영화인들과 교류하며 자주 여러 지역으로 출장을 가야 하는 쉽지 않은 직책에서 그는 늘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2010년에 목표로 세웠던 NBC에 들어가 온갖 일을 돕는 '페이지 프로그램'(Page Program)으로 시작, 오피스 코디네이터, 리셉셔니스트, 홍보국장 어시스턴트 등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올라 결국 디렉터 자리에 앉게 됐습니다. 꿈에 그리던 직장에 들어갔지만 초창기 궂은 일을 하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 어떤 일을 해도 힘들지 않아요."

UC 버클리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로사 김은 졸업하면서 반드시 NBC에 들어가겠다고 작정을 했다. 메이저 TV 방송국이면서 유니버설과의 합병으로 엔터테인먼트계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스케일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선 페이스북을 통해 NBC에서 일하는 대학 동창을 찾았고 그중 한 선배의 도움으로 이력서를 제출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안오는 거예요. 이력서를 제출한 사람에게 거의 매주 이메일과 전화를 했죠. 한 두어 달 그렇게 했더니 제 전화를 받으면 그쪽에서 지겹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였어요. 하지만 결국 그때부터 제 이력서를 신중하게 보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로부터 인터뷰를 하게 됐고 결국 입사를 했으니까요."

그는 이때 '백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교훈을 더욱 확신하게 됐다고 회상한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계속 공부하며 미국인으로 성장했지만 그가 일하면서 느낀 소수계에 대한 차별은 확실했다. 특별히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후 중역 층이 백인으로 메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그는 남보다 2배 이상 일을 했다.

"백인이 주류인 미디어에서 힘과 실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보다 몇 배 열심히 하면서 실력있고 성실한 사람에게는 아무리 차별하려 해도 근거가 없거든요.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이 나를 믿는다는 느낌을 받았지요."

하지만 그는 절대 녹록지 않은 여성이었다. 미국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일은 열심히 하지만 순종적이고 따지지 않는다'는 아시안 여성의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고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전달하곤 했다.

"승진도 봉급 인상도 때가 됐고 충분히 자격이 갖춰졌다고 생각하면 당당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관철될 때까지요. 특별히 마이너리티에게는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승진시켜주고 월급 올려주고 하는 일이 드물다는 것을 주변을 보며 느꼈거든요. 이런 어필을 통해 아마도 제가 원했던 것은 거의 받았던 것 같아요."

그는 이런 내면의 당당함이 가정에서 받은 정체성에 대한 확실한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학생으로 미국에 와 UCLA를 졸업하고 증권관련 일을 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 자녀에게 무엇보다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주는 교육을 우선시했다.

부모는 로사와 그의 오빠를 4세부터 주말 한국학교에 보냈다. 집에서는 언제나 한국어를 썼으니 영어보다 한국어 공부를 먼저 시작한 셈이다. 어머니는 금요일이면 으레 한글 숙제를 챙겼고 예습도 도왔다. 어머니가 한글학교에서는 자원봉사를 했기 때문에 '농땡이'는 있을 수가 없었다.

학창시절엔 그 역시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자신을 지켜나가는데 어려움도 있었다.

"다문화권인 LA에서 태어나 자랐어도 문화 충격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흔들리거나 방황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한국인'이라는 단단한 자아가 늘 저를 지켜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집 거실에는 아직도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어요. 이 태극기를 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겠어요?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사실을 매일 다지게 되는 거지요. 아마도 부모님이 이런 효과를 기대하시고 대형 국기를 집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걸어놓으신 것 같아요."

그의 오빠 역시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뿐 아니라 완벽하게 읽고 쓴다.

"지금까지는 직장에서 한국어로 도움받을 일이 별로 없었지만 요즘 미국의 영화계가 한국 엔터테인먼트와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꼭 한국어로 업무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연로한 외할머니와 한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오빠를 방문하기 위해 매년 모국을 방문할 때마다 그는 이 각오를 더욱 확고하게 다지곤 한다.

한국과 교류하는 미디어 분야의 CEO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는 당찬 여성 로사 김.

그의 상냥한 미소 속에 담긴 당당한 자아의식이 강인함보다 부드러운 아름다움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그를 대하는 모든 이의 공통된 느낌일 듯하다.

유이나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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