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보단 ‘여성운동가 이희호’의 생애 재조명 붐



김대중평화센터가 12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생전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은 2000년 이 여사가 펄퍽 인터내셔널 재단이 주는 '올해의 여성상'을 받는 모습.(김대중평화센터 제공) [뉴스1]






“이희호 ‘여사’란 호칭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12일 이희호 여사의 빈소를 찾은 박순희(73)씨는 이렇게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내가 아닌 ‘이희호’ 개인의 삶을 제대로 돌아봤으면 하는 바람이어서라고 했다.

이날 이틀째를 맞은 고(故) 이희호 여사의 빈소에는 ‘영부인’이 아닌 ‘자연인’ 이희호를 추모하는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들의 기억 속에 ‘자연인’ 이희호는 주체적으로 사회 변화를 이끌었던 1세대 여성운동가였다.

1970년대 원풍모방 노조의 부지부장으로 활동했던 박씨는 “이희호 여사가 자연인으로 살았으면 더 많을 활동을 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박씨는 “여성들이 권리를 찾지 못해 짓밟힐때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위로를 해줬다. 지금의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처음 출발할 때도 이희호 여사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김대중평화센터가 12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생전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은 1976년 이 여사가 3.1민주구국선언 재판일 당시 피고인 가족들과 함께 보라색 한복을 입고 참석한 모습.(김대중평화센터 제공) [뉴스1]






박씨는 이 여사를 ‘아이디어맨’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여사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보라색 옷 때문이다. 이 여사는 1976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3ㆍ1 민주구국선언(김대중·윤보선·문익환·김승훈 등 사회 지도층이 박정희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며 선언문을 발표한 사건)을 한 뒤 재판을 받을 때마다 보라색 한복을 입고 재판에 참석했다. 보라색이 ‘고난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만큼 대중에게 온몸으로 투쟁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이희호 여사의 유일한 자서전 『동행』을 집필한 유시춘 EBS 이사장은 조문을 마친 뒤 “이 여사는 이 땅의 사회적 약자와 정치적 무권리 상태에 있는 여성을 위해 일했다. 영부인 이희호는 그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10% 정도일뿐이다. 나머지 90%는 사회운동가, 인권운동가의 모습이다”라고 강조했다.

한영수 YWCA 회장은 “이 여사가 YWCA 사무총장을 할 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어려움을 당하는 여성들을 보고 혼인신고 강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여성 인권 운동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고 회고했다. 이희호 여사는 이후 ‘축첩한 자를 국회에 보내지 말자’ 캠페인에 앞장서기도 했다.




김대중평화센터가 12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생전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은 2015년 이 여사가 의료 물품을 전달하기 위해 방북하는 모습.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뉴스1]






생전엔 ‘영부인’ 이희호였지만 고인이 된 지금 오히려 ‘여성운동가’로서의 면면이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변화된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라 평가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내라고 하는 건 남편의 배우자에서 파생된 지위다. 전통적 성 역할에서 이렇게 생각했다면 '미투' 운동 이후엔 여성들의 주체적인 인식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희호 개인에 대한 조명이 이뤄지고 있는 건 그만큼 사람들이 상식으로 받아들였던 전통적 성 역할에서 나아가 성평등한 사회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평가속에서 대학가와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여성운동가로서 이 여사 삶을 재조명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사가 아니라 선생님이라고 써달라”고 부탁했다. 이 교수는 “여성운동의 큰 별이 진 거다. 여사보다는 한 세대의 선생님으로 기억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여성단체들은 이희호 여사의 발자취를 기억하며 13일에 진행되는 예배에 참석해 고인을 추모할 계획이다.

이우림·이가영 기자 yi.woolim@joongang.co.kr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오늘의 핫이슈

핫딜 더보기

이 글을 공유하려면 링크를 복사하여 붙여넣으세요.
복사를 누르시면 자동 복사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