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신사임당 유묵'의 기품

한국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신사임당'(1504-1551)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서다. 신사임당은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한국의 5만 원권 지폐의 초상 인물이다. 당시 여러 가지 논란을 제치고 5만 원권 지폐의 주인공이 됐다. 한국은행은 여성·문화를 대표하는 인물로 선정했다고 이유를 밝혔지만 예인으로 보다는 '한국의 대표적인 어머니상'으로서의 이유가 더 컸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관점에서 신사임당을 묘사하는 공식적인 첫 문장은 누구의 '어머니'가 아니다. 시·서·화에 뛰어난 조선시대 화가다. 그것도 당대 최고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녀는 산수화에 능했고 풀벌레, 포도, 어죽, 매화, 난초 등을 그린 그림은 마치 살아있는 듯한 섬세한 표현력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율곡의 스승이었던 조선 중기의 학자 어숙권은 신사임당을 몽유도원도의 안견 다음 가는 화가로 칭송했을 정도다.

서예가로서도 마찬가지다. 16세기에 등장한 초서풍을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신사임당이다. 후대에 '사임당 서파'가 생겨날 만큼 그의 글씨는 독특하면서도 뛰어났다. 1868년 강릉부사로 간 윤종의는 사임당의 글씨를 보고 후세에 남기기 위해 판각했다. 그리고 발문에 "정성들여 그은 획이 그윽하고 고상하고 정결하고 고요하여 부인께서 더욱더 저 태임의 덕을 본뜬 것임을 알 수 있다"고 격찬했다.

그런 사임당과 얼마 전 LA카운티미술관에서 마주했다. LA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서예전에서다. LACMA 서예전은 전서부터 현대 글씨까지 2000년의 한국 서예사를 총망라, 왕과 학자, 화가, 승려, 노비 등에 이르는 다양한 사회계층에서 나온 100여 점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는 전시다.

그 중 한 점이 '신사임당 유묵'이다. 이백의 시를 초서로 쓴, 가로세로 30.5x27㎝에 불과한 작은 작품이다. 하지만 서예를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그 기품과 내공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작품이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고 섬세하면서도 묵직한 카리스마가 있달까.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자니 '서여기인(書如其人)' '글씨는 그 사람됨과 같다'는 말처럼 마주하고 있는 건 사임당의 글씨일 뿐인데 그녀를 만난 듯 묘한 설렘을 줬다. 전시를 기획한 스티븐 리틀 LACMA 큐레이터가 "한국의 서예는 쓴 사람의 얼굴과도 같은 것"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정말 귀한 전시다. 세상에 7점 뿐이 없는 사임당의 서예 작품 중 하나를 볼 수 있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신사임당 유묵을 보기 위해서는 한국에 가서 부산까지 내려가 동아대를 찾아, 석당 뮤지엄에 가야만 한다. 전시는 오는 9월 29일까지다. LACMA는 수요일을 제외한 주 6일 오픈한다.

사회부 오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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