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앓이’의 계절…한국은 일본 따라잡을 수 있을까

7일부터 노벨상 수상자 발표
일본은 2000년 이후 16명 배출
55명 받은 미국 이어 세계 2위
한·일 과학 축적의 간극 100년
“10년 안에 따라잡을 수 있어”



지난해 12월 10일 스웨덴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서 일본의 혼조 다스쿠 교토대 명예교수가 전통 사무라이 복장을 하고 단 위에 올랐다. 그는 면역항암제 개발에 초석을 마련한 공로로 제임스 엘리슨 미국 텍사스대 교수와 함께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AFP=연합뉴스]





10월, 노벨상의 계절이 돌아왔다. 오는 7일 노벨 생리의학상 발표를 시작으로, 8일 물리학상, 9일 화학상이 연이어 발표된다. 누군가에게는 축제의 시간이지만, 늘 바라만 봐야하는 한국 과학계로서는 ‘홍역의 계절’이기도 하다. 노벨상이 과학기술 연구·개발(R&D)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인류에 기여한 뛰어난 연구 성과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과학계 최고 권위의 상이라는 점에서 노벨상은 여전히 부인할 수 없는 과학자들의 꿈이다.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은 2000년 이후 16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 미국(55명)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 언제쯤 노벨 과학상을 품에 안을 수 있을까.

기초과학연구원(IBS)은 3일 ‘노벨상과 기초과학 육성 전략:한국과 일본 비교’라는 보고서를 내고, 한국의 기초과학 역사는 일본에 비해 짧지만 최근 빠르게 성장 중이라고 밝혔다. 또 일본과 격차는 인정하되, 열도의 성공 경험을 벤치마킹하려는 노력이 더해진다면, 한국 과학자의 노벨상 수상도 멀지 않다고 전략을 제시했다.




노벨상 메달





노벨 과학상은 생리의학·물리학·화학, 세 기초과학 분야에서 나온다. 한국과 일본의 기초과학 역사와 축적의 격차는 얼마나 될까. 과학계에서는 양국 간의 격차를 최소 50년, 최대 100년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으로 막부체제가 붕괴하면서 직업을 잃어버린 하급 사무라이들을 서양에 국비 유학생으로 대거 보냈다. 이들이 돌아와 연구자·교수로서 현대 기초과학을 일본에 이식시켰다. 1886년부터 도쿄제국대학을 비롯한 7개 제국대학을 설치해, 최첨단 과학연구와 엘리트 교육을 시작했다. 또 1917년에는 아시아 최초의 기초과학 종합연구소인 이화학연구소(RIKEN)를 설립했다. 20세기 초에 이미 세계 수준의 기초과학 연구환경을 갖췄다는 얘기다.

심시보 IBS 기초과학연구원 정책기획본부장은 “일본은 근대의 시작과 동시에 과학자를 양성하고 국가 연구거점을 만들었다”며 “그런 오랜 축적의 성과가 2000년대 이후 최고 수준에 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은 1945년 해방 이후에서야 근대적인 연구·교육체제가 도입됐다. 하지만 이것도 산업화라는 국가적 과제가 우선시 되면서 기초과학 육성은 후순위로 밀려났다. 최초의 국가연구소라 할 수 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1966년 설립되고, 연구중심대학인 KAIST가 1971년 출범했지만, 기초과학보다는 산업기술 도입과 보급에 주력했다.

기초과학 연구자금을 지원하는 한국과학재단은 1977년 만들어졌다. 또 실질적인 연구기반을 조성한 ‘창의적 연구진흥사업’은 1996년에야 시작했다. 명실상부한 기초과학 종합연구기관인 IBS가 들어선 것은 2011년으로, 10년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같은 ‘축적의 시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서 한·일 간 기초과학 연구의 차이는 많이 좁혀지고 있다. 특히 일부 상위권 연구자 그룹에서는 한국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게 과학계의 평가다. 실제로 국제 학술정보 분석업체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옛 톰슨 로이터)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논문의 질적 수준을 볼 수 있는 피인용 세계 최상위권 연구자 부문에서 한국이 일본에 뒤지지 않는 추세다. 최근 5년간 피인용 상위 0.01% 연구자인, 일명 ‘노벨상 유력 후보 리스트’에는 일본이 7명, 한국은 3명이 올랐다. KAIST의 유룡 교수(2014년)와 성균관대 박남규 교수(2017년), 울산과학기술원(UNIST)의 로드니 루오프 교수(2018년)가 그들이다.




주요 국가의 노벨상 수상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피인용 상위 1% 연구자(HCR: Highly Cited Researcher) 수를 봐도 한국은 일본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지난해 한국은 53명, 일본은 90명 수준이다. 최근 수년 사이 한국 과학기술의 저력이 탄탄하게 올라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은 “일본이 1920년대에 기초과학의 토대를 갖췄다면 우리나라는 1990년대가 돼서야 기초과학 투자가 이뤄지기 시작할 정도로 한·일간 기초연구 역사의 간극이 컸다”면서도 “하지만 최근 20년간을 보면 일본은 젊은층이 이공대 대학원을 기피하고 정부의 투자도 떨어지면서 활력을 잃고 있는 반면, 한국은 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빠른 속도로 기초연구 투자가 이뤄지고 있어 일본을 빠른 속도로 따라잡고 있다”고 말했다.

IBS는 보고서에서 한국 기초과학 육성 전략으로 ①세계적으로 우수하고 국가를 대표하는 선도 과학자의 대형 프로젝트에 과감히 투자할 것, ②사회·경제 변화에 휘둘리지 않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기초과학 육성, ③세계 기초과학 중심부와 활발한 공동연구, 인재 교류를 통한 협력 네트워크 강화로, 세계에 한국의 연구수준을 널리 알리고 인지도를 올릴 것 등을 제시했다.

이승섭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는 “최근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배 교수들만 보더라도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성과를 올리고 있다”며 “이 같은 추세라면 늦어도 앞으로 10년 안에 우리나라에서도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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