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에어] 시위현장 청소하는 흑인 노인

총 118건. 그동안 리포트 중 흑인 관련 기사 건수다. 총 리포트가 1200개 정도 되니 JTBC LA 특파원으로 근무하면 써 온 기사의 10분의 1은 흑인과 관련된 내용인 셈이다. 안타깝게도 인종차별 이슈, 경찰 과잉진압으로 숨진 비무장 흑인에 대한 사건이 대부분이다. 사건, 사고를 다루는 것이 기자의 숙명이긴 하지만 인종차별 관련 사건의 피해자가 주로 흑인이라는 점은 슬프다.

백인 경관의 무릎에 목이 눌려 숨진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대한 항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애틀랜타에서 또 흑인 남성이 백인 경찰의 총격에 목숨을 잃었다. 레이샤드 브룩스는 지난 12일 밤 웬디스 햄버거 매장 앞에서 음주 측정 문제로 경찰관 2명과 몸싸움을 벌이다 한 경찰관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사건 당시 영상이 공개됐다. 경찰은 테이저건을 빼앗아 달아나던 브룩스에게 총격을 가했다. 브룩스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딸의 8번째 생일날 밤에 일어난 일이다.

유족들의 기자회견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2살 딸을 안고 기자 회견장에 나온 부인 토미카 밀러는 “경찰의 총격은 살인”이라며 “만약 내 남편이 경찰을 총으로 쏘는 일이 발생했다면 남편은 종신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 갔을 것”이라며 해당 경찰관들의 처벌을 요구했다.

미국의 인종 문제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미국의 원죄’로 표현될 정도의 역사 속에 복잡미묘한 감정을 안고 있다. 인종 차별 관련 항의 시위 현장에 가면 흑인들의 분노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에 대한 항의 시위는 약탈과 방화로까지 번졌다. 사건이 발생한 미니애폴리스뿐 아니라 애틀랜타, 뉴욕, LA 등 미국 도시 곳곳에서 약탈과 방화가 일어나 피해가 이어졌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한 흑인 여성은 “미국은 인종차별이라는 중병을 앓고 있다”며 “불에 타고 부서진 건물은 고칠 수 있지만, 인종차별 문제를 고치지 못하는 것이 정말 문제”라고 한탄했다.

경찰 과잉진압 사건은 항상 논란을 안고 있다. 평화적인 시위가 주를 이루지만 일부 과격 시위대의 폭력과 사건 당시 일부 피해 흑인들이 행동이 과잉진압을 불러 왔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누군가의 아버지, 아들, 친구의 목숨을 잃게 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위 현장의 모습 중 잊지 못하는 장면이 있다. 2014년 비무장 상태에서 경찰 총에 사망한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에 대한 시위가 소요사태로 번져 퍼거슨에 현장 취재 때 본 흑인 할아버지의 뒷모습이다.

당시 퍼거슨에서는 밤낮으로 시위가 이어졌고 일부 상점은 불에 타고 경찰과 시위대 충돌이 벌어졌다. 젊은 흑인들은 밤낮없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분노를 토해냈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한 흑인 할아버지는 시위가 잠시 중단되면 어디선가 나타나 시위대가 던진 잔해물들로 덮인 거리를 청소했다. 인터뷰를 청해볼까 했다가 쓰레기를 주워 담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에 이미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모두 담겨 있기에 아무 말도 묻지 않었다. 할아버지는 자기만이 방법으로 오랜 시간 지녀온 인종차별에 대한 아픔을 표현하며 다음 세대에 대한 당부를 하고 있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관련된 경찰관들이 모두 기소됐다. 이번 만큼은 모든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퍼거슨에서 봤던 할아버지가 미소 지을만한 결과를 기대해 본다.

부소현 / JTBC LA특파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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