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퍼스펙티브] 헬조선의 마왕들에게 던지는 물음

과거엔 특권이라 비판했던 그들
자신의 ‘청탁’은 ‘미담’으로 둔갑
자기 아이만 특별히 여기는 엄마
정의 담당 부서의 장 자격 있나?
반칙이 규칙으로 굳어져버리고
촛불은 어느새 지옥불로 변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추미애 사태는 기어이 제2의 조국 사태가 됐다. 평등과 공정과 정의를 외치는 정권의 사람들이 실은 자기들의 성채에서 특권을 누려온 사실이 또다시 드러난 것이다. 대응의 기조도 그때와 똑같다. ‘적법’하다면 아무 문제없다는 것. 한 가지는 확실하다. 적법하다는 그 방식으로 서민들이 자식을 시험 없이 의전원에 보내거나 전화만으로 자식의 휴가를 연장하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범죄자들의 변명 기법

오래전에 조국 전 장관이 SNS에 이런 글을 공유한 적이 있다. ‘범죄자들의 변명 기법. (1) 절대 안 했다고 잡아뗀다 (2) 증거가 나오면 별것 아니라고 한다 (3) 별것 같으면 너도 비슷하게 안 했냐며 물고 늘어진다 (4) 그것도 안 되면 꼬리 자르기를 한다.’ 문재인 정권 또한 조국과 그 가족의 비위 의혹을 정확히 이 ‘기법’으로 처리했다. 추미애 사건도 같은 궤적을 그리는 모양이다.

처음에 추미애 장관은 아들 일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고 잡아뗐다. “소설 쓰시네.” 이는 금방 거짓말로 드러났다. 국방부에서 부모가 민원을 넣은 기록이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의원실 보좌관이 부대로 여러 번 전화를 한 사실도 드러났다. 게다가 국방장관 정책보좌관이 통역병 선발과 관련해 여기저기 부적절한 청탁을 하고 다니다 “행동 조심하라”는 경고를 받은 사실도 밝혀졌다.

증거가 나오자 2단계로 넘어간다. “카투사 자체가 편한 보직이라 휴가를 갔냐 안 갔냐는 별로 의미 없는 얘기다.”(우상호 의원) “전화한 것은 사실인데 외압은 아니다.”(김남국 의원) “보좌진은 공사 경계선에 있어 문의 전화가 문제 안 된다.”(홍익표 의원) 심지어 “부모 자식 관계도 단절해야 하냐”(장경태 의원)는 항변, 심지어 “민원을 넣었다는 것은 권력을 행사한 게 아니라는 얘기”(설훈 의원)라는 궤변까지 나왔다.

사건이 ‘별것’으로 번지니 3단계가 시작됐다. 지지자들이 “너희 자식도 까 보라”고 외친다. 김남국 의원은 야당을 물고 늘어진다. “야당엔 군대 안 갔다 온 분들이 많다.” 그런데 확인해 보니 정작 병역을 면제받은 의원은 민주당이 야당보다 세 배나 많다. 병역을 면제받은 의원 2세 15명 중 14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이에 고무된 야당 의원들은 단톡방에서 군대 간 자식 사진 경연대회를 벌였다.

어떤 데자뷔




그래픽=최종윤





3단계까지는 여야 가릴 것 없이 고루 사용해 온 기법이다. 민주당 고유의 종적 특성이 드러나는 것은 역시 4단계. 왜? 민주당의 사전에 ‘꼬리 자르기’란 말은 없기 때문이다. 조국도, 윤미향도, 추미애도 자르지를 않는다. 민주당의 방법은, 그들이 아무 잘못도 하지 않는 대안 세계를 창조해 국민을 그리로 이주시키는 것이다. 그 가상현실은 물론 유치한 음모론과 맹랑한 미담으로 지어진다.

민주당의 김종민 의원은 이 모든 것이 “추 장관 중심으로 추진 중인 검찰개혁을 흔들어 보려는” 음모라고 주장한다. 김어준은 아예 “탄핵을 부정하는 태극기 부대 작품”이라고 규정한다. 이 음모론과 짝을 이루도록 뭉클한 미담도 만들어졌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익명의 카투사 출신을 내세워 서 일병이 ‘십자인대 파열’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굳이 안 가도 될 군대에 간 애국자였다는 것이다.

국방부에서는 이 모든 게 적법했다는 해명을 내놨다. 그 해명은 민주당과 조율을 거친 것으로 드러났다. 애초에 국방부가 아니라 민주당의 입장이었다는 얘기. 국방부가 법무부의 지청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마저도 거짓이었다. 그 일이 있기 석 달 전, 국방부에선 ‘진료 목적의 청원휴가는 최초 10일이며, 연장이 필요한 경우 군 병원 요양심사위원회를 거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최선의 방어는 역시 공격이다. 추 장관은 폭로자와 그의 증언을 보도한 방송사를 고소해 버렸다. 몇 년 전만 해도 그는 이렇게 말하고 다녔다. "내부 고발자는 큰 결심과 용기를 필요로 하고 고발 이후엔 배신자라는 주홍글씨를 안고 살아가는 게 현실입니다.” 그 고발이 자기를 향하니 생각이 바뀐 모양이다. 심지어 한 민주당 의원은 제보자를 범죄자라 부르며 검찰에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장관이냐 엄마냐

분명한 사실은 서 일병이 휴가를 연장받는 과정에서 부모 중 하나가 국방부에 민원을 넣고, 보좌관이 세 차례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통역병 선발 과정에도 민주당 출신 국방장관 정책보좌관의 로비가 있었다는 것도 사실로 밝혀졌다. 용산 배치 청탁 건 역시 ‘애초에 용산에 보내줬어야지’라는 서 일병의 글로 보아 사전에 그것을 위한 움직임이 있었으리라 추정하는 게 자연스럽다.

사실은 허구로 지은 그들의 매트릭스를 위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선가? 추 장관이 발표한 사과문에는 일절 ‘사실’에 대한 해명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국민이 반대하는 탄핵을 한 죄를 갚겠다고 국민이 시키지도 않은 삼보일배를 하다가 무릎을 다쳐 높은 구두를 못 신는 중증 장애를 얻었다는 둥 애절한 신파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과를 받고도 그게 ‘무엇’에 대한 사과였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

국회에 불려 나와서도 그는 ‘사실’의 확인을 모조리 피해갔다. "실제 보좌관이 전화했는지 여부, 또 어떤 동기로 했는지는 말씀드릴 형편이 못 됩니다.” 민원을 넣은 게 남편이었냐고 묻자 "주말부부라 남편에게 물어볼 형편이 못 된다”고 대꾸한다. 자신은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단다. "저는 검은 것을 희다고 말해 본 적이 없습니다.” 맞다. 그저 검은 것이 검다고 "말씀드릴 형편이 안 된다”고 했을 뿐.

불편한 사실을 차단한 채 망상으로 도피한 그는 그 안에서 아들과 함께 이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었다. ‘스포츠 경영학을 공부한’ 제 아이가 외려 역차별을 받아 통역병 선발에서 떨어져서 억울하단다. 여기에 선발 방식이 면접에서 제비뽑기로 바뀐 게 자기 측에서 벌인 로비 때문이었다는 얘기는 빠져 있다. 국회 단상 위에서 그는 ‘장관’이 아니라 채 못 자란 어느 큰 아기의 ‘엄마’로 행동했다.

적법하면 문제 없다

‘적법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청탁은 대개 ‘손타쿠’(忖度·다른 사람의 뜻을 헤아려 행동한다는 뜻)의 형식으로 이루어지므로 법정에서 직접적 지시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수사팀 역시 증인의 중요한 증언을 누락시켰던 그 사람들. 설사 의혹들이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딱히 적용할 법률을 찾기도 어렵다. 기껏해야 김영란법 정도랄까? 이번에도 적법의 잣대로 윤리적 책임을 피해가겠다는 속셈이다. 조국 사태 때 봤던 그 패턴 그대로다.

이 사건의 본질은 그가 공인(公人)으로서 해서는 안 될 추잡한 짓을 했다는 것이다. 보좌관이야 아들과 평소에 알고 지냈다 쳐도, 국방장관의 정책비서관이 통역병 선발을 위한 청탁을 하고 다니는 것은 추 장관 본인의 관여 없이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사건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물음은 이것이다. ‘제 아이만 특별히 여기는 엄마가 한 나라의 정의를 담당하는 부서의 장을 하고 있어도 되는가?’

추 장관은 24년 전 이런 말로 정치를 시작했다. "부잣집 딸이든 가난한 집 아들이든 사회에 나아갈 때는 누구나 동등하게 출발할 수 있는 기회 균등의 꿈이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2016년 당 대표 선거에선 이렇게 외쳤다. "금수저 가진 사람일수록, 고위공직자일수록 반칙을 통해 특혜를 누리고, 기회는 공정하지 않은 헬 조선이 되었다.” 그런 그가 대표가 되더니 반칙으로 특혜부터 누리려 했다.

그의 전임도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 헬 조선의 현실을 목 놓아 규탄했다.

“어느 집안에서 태어났는가가 삶을 결정해 버리는 사회, 끔찍하지 않습니까.” 그런 그들이 그 끔찍한 지옥의 높은 자리에 앉아 마왕 노릇을 하고 있다. 그 모든 파렴치에도 조국을 임명 안 하면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된다”고 했던 게 대통령. ‘좋음’과 ‘나쁨’의 기준이 뒤바뀐 분이니, 그의 역할을 기대할 수도 없다.

촛불은 지옥불이 되었다. 슬픈 것은 그 지옥의 수인(囚人)들이 ‘우리가 조국’이며 ‘우리가 추미애’라며 제 자식들을 태울 유황불에 열심히 풀무질을 한다는 사실. 과거엔 특권을 비판이라도 할 수 있었다. 이젠 그것마저 불가능해졌다. 왜? 반칙이 이미 규칙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벌써 청탁을 ‘미담’이라 부르고 있다. 이 헬조선을 창조하신 대마왕께 묻고 싶다. 각하, "어느 집안에서 태어났는가가 삶을 결정해 버리는 사회, 끔찍하지 않습니까.”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오늘의 핫이슈

Video News

핫딜 더보기

이 글을 공유하려면 링크를 복사하여 붙여넣으세요.
복사를 누르시면 자동 복사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