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오디세이] 보광사 주지 종매스님 ‘오리지널 미국 중‘, 행복을 배달하다

86년 애나하임 보광사 개원
USC·LMU서 불교학 교수
[LA중앙일보] 06.18.17 15:03
인터뷰가 있었던 LA 고려사 법당에서 종매스님이 합장을 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오스트리아·독일·미국 등에
사찰 23곳· 불교대학 건립

종교간 화합위해 노력
시국선언 등 현실참여도

"고통·불안 벗어나려면
미래 아닌 현재 살아야"


스님은 유쾌했다.

스님과 유쾌함이라니. 분명 생뚱맞은 조합이라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종매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금세 그것이 꽤나 부끄러운 편견임을 알게 된다. 아뿔싸, 잠시 잊고 있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다)을.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의 경계(境界)마저 경계(警戒)했을 석가의 가르침을. 그리하여 마음의 경계를 한 뼘쯤은 내려놓고 나눈 종매스님과의 대화는 무진장(無盡藏) 유쾌했다.

#한국 스님, '오리지널 미국 중' 되다

1972년 북한산 황룡사로 출가했을 때가 스님 나이 열여덟이랬다. 3년간의 행자승 생활을 마치고 지리산 화엄사 도광스님에게서 사미계를 받고 승려가 됐다. 이 모든 걸 스님은 그저 운명이라 말한다.

"첫 기억이 있던 서너 살 무렵부터 그냥 절이 좋았어요. 아주 어린 나이에도 절에 가면 마음이 편안하고 제집 같았으니까요. 독실한 불자 집안이었기에 부모님 역시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으셨죠."

1976년 군법승으로 입대한 그는 엄혹했던 유신정권 시절, 유신독재를 반대하는 설법으로 정권의 미움을 사 잠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 1979년 도미, 다우니에 정착한 그는 승려이기 이전에 평범한 이민 1세로 낮엔 비행기 부품 공장에서 일하고 밤엔 사무실 청소를 하며 고단한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그가 2014년 펴낸 책 제목처럼 '오리지널 미국 중'이 됐다. 1985년부턴 가든그로브 소재 정해사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청년법회를 이끌었고 이듬해 애너하임에 보광사를 개원했다. 그리고 1992년 3월엔 LA사우스센트럴에 지원도 열었다.

4·29 LA폭동이 나기 딱 한 달 전의 일이었다. 4·29 LA폭동 후 그는 흑인 커뮤니티 교회들을 다니며 한흑 갈등 치유를 위한 설교에 주력했고 사우스센트럴 지역의 홈리스들도 물심양면 도왔다. 그리고 국제승가협회에 소속돼 타인종 승려들과 함께 미국 내 포교활동에 힘썼고 매년 세계 불교콘퍼런스에 미국 대표로 참석해 세계 각국의 승려 및 불교학자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또 불교학 공부도 재개, 석사(1998년) 및 박사(2003년) 학위를 취득했고 1999년 USC 불교관 관장으로 부임, 불교학 강의를 시작하며 본격적인 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세계 포교를 위한 꿈

2004년 USC를 사직한 그는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오래 전부터 꿈꿔왔던 세계 포교를 위해서였다. 이미 1992년 빈 대학 불교학 교수들의 요청으로 빈에 그의 호를 딴 포교당 묵림원을 개원해 오스트리아에 한국불교를 알리기 위해 노력해 온 그는 2003년엔 오스트리아 최초의 정규 온라인 불교대학인 국제불교대학(IBS)도 설립했다. 이후 스님은 캐나다와 폴란드, 영국, 독일, 미국 등에 23곳의 사원을 개원했고 독일과 미국에도 IBS를 설립하는 등 세계 포교에 힘썼다.

2007년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로욜라메리마운트 종교학과 교수로 부임해 2015년까지 불교학을 강의했다. 대학 강단에 서는 동안 집필활동에도 매진해 2006년 독일어로 쓴 '불교학 개론'을 필두로 이듬해 영문판 '불교학 개론'을 2012년엔 '현대 한영불교영어사전'(2012년) 등 지금까지 총 7권을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중 '불교학 개론' 영문판은 미국 대학에서 불교학 교과서로 쓰일 만큼 불교학계에서도 인정받은 책이다. 현재 그는 미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 됐다. 태고종 해외교구장을 거쳐 현재 해외교구 회주를 맡고 있는 그는 2008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방미 때 미 불교계 대표로 교황을 만났으며 지난해엔 미국 대표로 '세계 불교 지도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그는 미국 내 타인종 승려들을 70명이나 배출했는데 그중 태국출신 혜정스님은 2011년 미 육군 군법사 1호로 한국 태고종에 입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한평생

스님을 떠올릴 때 학자나 종교인보다 더 강렬한 이미지는 바로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것. 최근만 해도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LA촛불집회를 이끌며 종교인들의 시국선언에 동참하기도 했다. 또 오래 전부터 미국 내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 및 보상을 받기 위한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앞장섰는데 지난해 초 글렌데일 소녀상 앞에서 개최된 위안부 할머니들 추모제에서 진혼제를 집전하기도 했다.

"제 스승께선 실천하지 않는 지식은 늘 가짜라고 말씀 하셨죠. 저 역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침묵하는 혹은 타협하는 지식인이 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중과 함께 울고 웃기 위해 거리에 서다보니 오늘에 이르렀네요.(웃음)"

또 스님은 종교간 화합에도 앞장서 왔다. 1989년부터 주류사회 가톨릭 사제들과 '불교-가톨릭 대화'란 모임을 만들어 40여 명의 사제와 승려들이 모여 사회적 이슈를 토론하기도 하고 석가탄신일과 성탄절엔 승려와 사제들이 각각 천주교회와 절에 가서 축하해 주는 등 종교간 벽을 허무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모든 종교는 화합과 사랑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2000년간 종교간 분쟁은 끊이질 않고 있죠. 이런 종교 갈등을 종식하려면 서로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통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이를 포용하려 노력하는 게 중요합니다."

2015년 교수직에서 은퇴한 뒤에도 스님은 그를 찾는 이들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올해만도 대만과 한국, 폴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등 5개국을 특강 차 다녀왔다. 잦은 출타가 힘들 법도 한데 그는 특강 이야기에 행복해 보였다.

"제 강의을 통해 삶의 행복과 평화, 자신감을 찾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어요? 모든 중생은 모든 고통과 억압에서 벗어날 의무가 있다는 게 부처님의 말씀이지만 많은 이들이 여전히 과거를 후회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불안해하느라 소중한 현재를 놓치며 살고 있죠. 바로 지금을 살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언제쯤 지식은 지혜가 될 것인가. 또 언제쯤 집착의 끝에서 해탈의 엷은 미소 한줄기 보게 되려나. 짧은 단상이 긴 화두가 될 무렵 스님은 모든 걸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라며 웃는다. 그러나 염화미소 여전히 요원하고 날카로운 죽비소리만 요란한 한낮이었다.